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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공] 안동권씨 권한공의 생몰년에 대하여

김윤식 2019. 2. 4. 01:27

권한공의 생몰년에 대하여




권한공(權漢功)은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의 13세(世)로 복야공파(僕射公派) 파조인 권수홍(權守洪)의 증손이다. 그의 사망 일자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기록돼 있으나, 출생 일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글은 권한공과 그의 아버지 권책(權頙), 어머니 영가군대부인(永嘉郡大夫人)의 생몰 연도를 최초로 밝히는 글이다.


권한공의 시문집으로 『일재일고(一齋逸稿)』가 전하는데, 후손 권제행(權濟行)이 편집한 것을 1890년(고종 27년)에 권주욱(權周郁)과 권주엽(權周曄) 등이 『영가세고(永嘉世稿)』에 합록하여 간행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영가세고』는 4권 2책인데, 권1이 『일재일고』이다. 권1에는 권한공의 간략한 연보(年譜)와 시(詩),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책에도 권한공의 출생 연도나 구체적인 출생 일자가 기록돼 있지 않다. 하지만 『목은고(牧隱藁)』의 목은시고(牧隱詩藁) 권26에 실린 시 한 편과 최해(崔瀣)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실린 <권일재(權一齋)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代權一齋祭母文)> 1편 등 권한공과 그의 가족에 관한 글 두 편이 전해오는데, 바로 이 자료와 『일재일고』의 연보, 고려사 세가, 고려사절요 등의 기록을 조합하면 그의 출생 연도를 밝힐 수 있다.


우선 고려사 세가와 고려사절요, 『일재일고』의 연보에 실린 권한공의 사망 기록부터 살펴보자. 이 기록에 의해 그의 사망일은 1349년(충정왕 원년) 9월 20일(음)임을 알 수 있다.


■ 고려사 세가 충정왕 원년 9월 무인(戊寅)
  戊寅。醴泉府院君權漢功卒。
  무인일(20일)에 예천부원군 권한공이 졸하였다.


■ 고려사절요 충정왕(忠定王) 1년 9월
  醴川府院君權漢功卒。
  예천부원군 권한공이 졸하였다.


일재일고(一齋逸稿) 연보

  至正九年己丑九月戊寅先生寢疾考終

  원나라 지정(至正) 9년 기축년(1349, 충정왕 1) 9월 무인일(戊寅日 : 음력 20일)에 선생이 병으로 세상을 마쳤다.



권한공의 아버지 권책(權頙)은 첨의평리를 역임하고 치사(致仕)하였으며, 어머니 영가군대부인(永嘉郡大夫人)은 군기감(軍器監) 권제(權濟)의 따님이다. 부인의 작호로 볼 때 친정아버지가 안동권씨인 듯하나 사서(史書)나 안동권씨보에서는 권제(權濟)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일재일고』의 권한공 전기(傳記)에는 “어머니 부인 권씨는 군기감 권제(權濟)의 따님이다.(妣夫人權氏軍器監濟之女)”로, 『씨족원류(氏族源流)』 안동권씨(453~454쪽) 항목에는 “군기감■■ 권제(權濟)의 딸(軍器監■■權濟女)”로 적혀 있다. 이 두 사람 역시 생몰 연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권한공의 출생 연도에 대해 『일재일고(一齋逸稿)』의 권한공 연보(年譜)에는 “가승(家乘)에 생년(生年)이 전하지 않지만” 목은 이색이 권한공의 사위 염제신(廉悌臣)에게 준 시의 끝 구절에 장인 권한공처럼 90세를 누리라 축수한 말(曲城冢宰逾強健 곡성 총재는 늙어갈수록 더욱 강건하니 應似氷翁九十春 응당 빙옹을 닮아 구십 연세를 향수하리)을 빌려 생년(生年)을 “원나라 중통 10년 기사년[고려 원종 10년, 1269년](元中統十年己巳 高麗元宗十年)”으로 추정하고 는데, 이는 원나라 중통 1[고려 원종 1, 1260](元中統一年己巳 高麗元宗一年)’을 잘못 적은 것이다. 아마도 판각하기 위해 판하본을 만들 때 착각한 듯하다. 권한공의 사망 연도는 1349년이므로 향년(享年)90세라면 당연히 출생 연도는 1260년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통(中統)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 때의 연호로 1260년부터 1264년까지 5년간 사용하였으므로 중통(中統) 10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기도 하다. 하지만 1260년은 권한공의 출생 연도가 아니다.



최해(崔楷)의 『졸고천백(拙藁千百)』에 실린 <권일재(權一齋)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代權一齋祭母文)>에는 권한공의 아버지 권책(權頙)과 어머니 영가군대부인 안동권씨의 향년(享年)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月日。孤子某敢告亡母故永嘉郡大夫人之靈。……至如吾母。九十五歲。論其平昔。其有異於此輩。方年十餘。歸于我氏。至其劬勞二十有二載。調琴瑟餘五十年。追惟先子。公正勤儉。天所扶佑。七十有五。忽焉見背。是時母年又七十二。自此私心一懼一喜。豈知兒年七旬又四。而且僥倖身居上相。手假省權。富貴之極而母尙康寧。得終于此。……
모월 모일에 고자(孤子) 아무개는 돌아가신 어머니 고(故) 영가군대부인의 영령께 감히 고하나이다. …… 우리 어머님께서는 아흔다섯 해를 사셨는데, 일평생을 논해 보면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10여 세에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와서 22년 동안 나를 키웠고 50년 동안 부친과 함께 사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건대 선친께서는 공정하고 근검하신 분으로 하늘의 도움을 받아 75세까지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이때 어머니의 연세가 또한 72세였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셔 왔으니, 그 아들이 74세가 되고 또 요행히 상상(上相)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권한을 손에 쥐어 더없는 부귀를 누릴 때까지 어머니께서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사시다가 이번에 생을 마치게 되실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졸고천백)


이 제문(祭文)은 ①권한공이 74세로 상상(上相 : 政丞)의 자리에 있을 때 어머니 영가군대부인이 향년 95세로 운명을 달리하고, ②권한공의 아버지 권책(權頙)이 75세로 사망할 당시 어머니는 72세로 연령 차이가 3년임을 밝히고 있다. ③아울러 어머니가 자신을 22년 동안 양육하고 50년 동안 부부가 해로하였다고 적고 있다.


권한공이 상상(上相) 즉 최고위직인 정승(政丞)에 오른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일재일고(一齋逸稿) 연보(年譜)
元統六年戊寅二月。拜右政丞。
원통 6년 무인년(1338년, 충숙왕 복위 7년) 2월에 우정승에 임명되었다.



■ 고려사 세가 충숙왕 복위 7년(1338년) 7월
乙卯。地震。失里迷入城。以王不迎詔責問。政丞權漢功贊成事閔祥正趙瑋等以王有疾對。
을묘일(22일)에 지진이 일어났다. 실리미(失里迷)가 도성에 들어와 왕이 조서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책문하였다. 정승 권한공(權漢功)과 찬성사 민상정(閔祥正), 조위(趙瑋) 등이 왕에게 병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 고려사 열전 권한공(權漢功)전
漢功官至都僉議政丞醴泉府院君。嘗受元命爲太子左贊善。忠定元年卒。謚文坦。
권한공은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으로부터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 벼슬을 받았다. 충정왕 원년(1349년)에 죽으니 시호를 문탄(文坦)이라 하였다.


■ 고려사절요 충숙왕 복위 7년(1338년) 7월
失里迷入城。以王不迎詔責問。政丞權漢功贊成事閔祥正趙瑋等以王有疾對。
실리미(失里迷)가 성에 들어가 왕이 조서를 맞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책하자 정승(政丞) 권한공(權漢功), 찬성사 민상정(閔祥正)·조위(趙瑋) 등이 왕이 병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 씨족원류 안동권씨
子 漢功
又云都僉議右政丞醴泉府院君。忠定己丑九月卒。
도첨의우정승 예천부원군이라고도 한다. 충정왕 기축년(1349년, 충정왕 1년) 9월에 졸하였다.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권한공이 상상(上相)인 도첨의정승에 오른 때는 1338년(충숙왕 복위 7년)이다. 『일재일고』 연보에는 1338년 2월로 밝히고 있다. 즉 1338년은 그의 어머니 영가군대부인이 향년 95세로 사망한 해로서 권한공은 이때 74세였다. 권한공은 1349년에 사망하였으므로 그의 향년은 85세, 출생 연도는 1265년(원종 6년 을축년)이 된다. 어머니 영가군대부인은 1338년에 95세로 사망했으므로 출생 연도는 1244년(고종 31년 갑진년)이다. 아버지 권책(權頙)은 배위 영가군대부인보다 3년 연상이므로 출생 연도는 1241년(고종 28년 신축년)이고, 75세에 사망하였으므로 사망 연도는 1315년(충숙왕 2년 을묘년)이다.


■ 권한공과 부모의 생몰 연도
  권     책 : 1241년(고종 28년 辛丑年)~1315년(충숙왕 2년 乙卯年) 享75
  안동권씨 : 1244년(고종 31년 甲辰年)~1338년(충숙왕 복위 7년 戊寅年) 享95
  권 한 공 : 1265년(원종 6년 乙丑年)~1349년(충정왕 1년 己丑年) 9월 20일(음력) 享85


한편, 권한공의 출생 연도를 밝혀 냄으로써 그가 예부시에 급제할 당시 나이까지 확인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고려사 열전 권단(權㫜)전에 권한공 등을 선발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권단(權㫜)이 과거를 관장한 때는 1284년(충렬왕 10년)이다.


■ 고려사 열전 권단(權㫜)전
邑吏以㫜爲按廉。減折絲價對。與旵並罷。宰相言。㫜爲民革弊而罷。孰有憂民者。尋復其職。遷判衛尉寺事。掌試取士。多知名士。權漢功金元祥崔誠之蔡洪哲白頤正。後皆爲名相。
읍리(邑吏)가 권단이 안렴사로 있을 때 실 값을 깎았다고 하므로 권단을 최참과 함께 파직하였다. 재상이 말하기를, “권단은 민을 위해 폐단을 고쳤지만 파직되었으니 누가 민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 복귀하여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로 옮겨 과거를 관장하며 선비들을 선발하였는데, 이름이 알려진 선비들이 많았고 권한공(權漢功), 김원상(金元祥), 최성지(崔誠之), 채홍철(蔡洪哲), 백이정(白頤正)은 후에 모두 이름이 있는 재상이 되었다.


■ 고려사 선거지 선거1(選擧 一)
(忠烈王)十年十月。判密直司事金周鼎知貢擧。判衛尉寺事權㫜同知貢擧。取進士。賜趙宣烈等三十三人明經二人恩賜一人及第。
충렬왕 10년(1284년) 10월 판밀직사사 김주정(金周鼎)이 지공거, 판위위시사 권단(權㫜)이 동지공거가 되어 진사(進士)를 뽑았는데, 조선열(趙宣烈) 등 33명, 명경업 2명, 은사(恩賜) 1명에게 급제(及第)를 내려주었다.


권한공이 문과(예부시 제술업) 급제한 때는 충렬왕 10년(1284년)이므로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0세의 약관(弱冠)이었다. 그와 같은 해에 급제한 동년(同年)으로 현재 밝혀진 사람은 장원 급제자 조선열(趙宣烈)을 비롯해 최성지(崔誠之), 김원상(金元祥), 채홍철(蔡洪哲), 백이정(白頤正) 등이다.


또한 <권일재(權一齋)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代權一齋祭母文)>에서 어머니 영가군대부인이 22년 동안 자신을 양육하였다고 한 글귀(方年十餘歸于我氏至其劬勞二十有二載)는 권한공이 20세에 문과 급제하여 2년 뒤 22세에 혼례를 올리고 슬하에서 독립해 나간 것을 뜻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