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김득우호구자료] 전농정(典農正) 선조의 호적도(戶籍圖) 뒤에 적다

김윤식 2019. 1. 29. 23:36


書典農正先祖戶籍圖後

 

始祖太師之後譜系無傳京鄕各派雖家有私牒皆自典農公始典農以前豈無二三代所錄而世序相錯內外無以辨矣及得典農正戶帳然後始知公須副正以下六代諱字官啣縱未能上承始祖得此亦已奇矣盖壬辰兵燹後本府帳籍擧入還紙而適典農正府君戶口自紙匠僧落在豊山縣西枝谷村人家其規與今不同內派則曾祖上又書曾祖自進士府君至六代祖副正府君是也外派則外祖上又書外祖如母邊上至五代金仁又書母之父金龜之外祖金應磾祖母邊及曾祖母邊皆上至高祖[金用義權通義]又書祖母父金允侃曾祖母父權公茂之外祖[金應孚金至誠]母外邊上至高祖權永平又書外祖母父權契之外祖金溫妻邊上至六代柳節又書妻父柳開之妻父林松衍長女壻邊上至曾祖權奕又書女壻之外祖金可器是也惟高祖母邊次女婿邊只書父如高祖母之父曺碩材次女婿孫仁裕之父得壽又是也至於子婦邊之只書權希正以其曾祖與外祖已載於長女壻邊故也合上下八代之間中表諸派了然可按一紙口帳之得豈非我後承莫大之幸也玆當續譜之會有不忍便付休紙使族叔麟慶排作一圖又以原籍附之圖後噫煤烟屋柱之下依微見數字杜氏羔猶以自多則矧此滄桑百劫之餘忽若有隕自天不失爲奠繫世管人心之一助乎凡我太師來雲按圖攷譜尙有以知吾家文獻之徵賴有此籍二十四代孫養根書于始祖壇下

 

전농정(典農正) 선조의 호적도(戶籍圖) 뒤에 적다

 

시조 태사(太師 : 김선평) 이후에 족보 상 계대가 전하지 않는다. 경향 각 파가 비록 집집마다 사첩(私牒)이 있어도 모두 전농공(典農公 : 김득우)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농공 위로 두세 대()를 기록한 것이 어찌 없을까마는 세대 순서가 서로 뒤섞이고 친손과 외손을 구분할 수 없었다. 전농정의 호장(戶長 : 호적대장)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공수부정(公須副正 : 金習敦) 이하 6대의 휘(: 이름)와 관함(官啣 : 관직)을 알게 되었다. 끝내 위로 시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이 호적대장을 얻은 것만으로도 매우 기이한 일이다.


임진년(선조 25, 1592)의 전란 뒤에 본부(本府 : 안동부)의 장적(帳籍)이 환지(還紙 : 헌 종이로 다시 만든 종이)로 들어갔는데, 마침 전농정 부군의 호구(戶口)가 지장승(紙匠僧 : 종이 만드는 기술을 지닌 승려)에게서 나와 풍산현(豊山縣) 서지곡(西枝谷)의 인가(人家)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규정이 지금과 달랐다.1) 내파(內派 : 친손)는 증조부 위로 다시 증조부까지 적어 넣었으니 진사부군(進士府君)부터 6대조 부정부군(副正府君 : 김습돈)까지 적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외파(外派 : 외손)는 외조부 위로 다시 외조부까지 적었으니 모변(母邊 : 어머니의 계대)은 위로 5대조 김인(金仁)까지 적고, 다시 어머니의 친정아버지 김구(金龜)의 외조부 김응제(金應磾)를 적어 넣었다. 조모변(祖母邊)과 증조모변(曾祖母邊)은 모두 위로 고조부 김용의(金用義)와 권통의(權通義)까지 적어 넣었다.


또 할머니의 친정아버지 김윤간(金允侃)과 증조모의 친정아버지 권공무(權公茂)의 외조부 김응부(金應孚김지성(金至誠)까지 적어 넣었다. 어머니의 외가 쪽은 위로 고조부 권영평(權永平)까지 올라가고, 외조모의 친정아버지 권계(權契)의 외조부 김온(金溫)까지 적어 넣었다.


아내 쪽으로는 위로 6대조 유절(柳節)까지 적고, 친정아버지 유개(柳開)의 장인 임송연(林松衍)을 적어 넣었다. 큰사위 쪽으로는 위로 증조부 권혁(權奕)까지 적고, 또 큰사위의 외조부를 적었으니 김가기(金可器)가 바로 그것이다. 다만 고조모 쪽과 둘째 사위 쪽은 각각 아버지만 적었다. 고조모의 친정아버지가 조석재(曺碩材), 둘째 사위 손인유(孫仁裕)의 아버지가 손득수(孫得壽)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며느리 쪽에는 권희정(權希正)만 적어 넣은 것은 그 증조부와 외조부가 이미 큰사위 쪽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위아래를 합쳐 8() 사이의 중표(中表)2) 관계인 모든 파()를 훤히 살펴볼 수 있으니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한 옛날 호적대장을 얻은 것이 어찌 우리 후손들의 크나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에 속보(續譜)3)를 간행하는 시기를 맞이하여 다시 하찮은 종이 조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어서 족숙(族叔) 김인경(金麟慶)으로 하여금 한 장의 그림을 그리게 하고, 호적대장 원본을 그 그림 뒤에 붙여 놓는다.


! 연기에 그을린 기둥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몇 글자 두씨고(杜氏羔)를 대단하게 여기는데, 이 호적대장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겪은 백겁(百劫)의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홀연히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선대(先代)와 계세(繫世)4)를 마음에서 잃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우리 태사(太師)의 아득한 내손(來孫)과 운손(雲孫)은 호족도(戶族圖)와 족보(族譜)를 상고하여 우리 가문의 문헌(文獻)의 징험(徵驗)이 이 호적대장에 힘입은 것을 알기 바란다.


24대손 김양근(金養根)이 시조 단소(壇所) 아래에서 적는다.

 

<주석>

1) ……달랐다 : 호적대장에 적는 방법이나 규정이 이 글을 적던 때와 달랐다는 뜻이다.

2) 중표(中表) : 친척 관계인 내종·외종·이종을 통틀어 이르는 말.

3) 속보(續譜) : 먼저 간행한 족보에 이어서 족보를 계속 편찬하는 일.

4) 계세(繫世) : 세계(世系)를 기록한 보첩(譜牒).